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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곡성 종교와 악의 상징 기독교적 상징의 재해석,무속신앙과 민간신앙의 복합성,악의 실체는 무엇인가

by pine147 2025. 7. 21.

영화 곡성 관련 사진

 

2016년 개봉한 나홍진 감독의 영화 <곡성>은 단순한 공포영화를 넘어, 종교와 인간 심리, 그리고 ‘악’이라는 개념에 대한 깊은 고찰을 담고 있습니다. 한국 영화에서는 드물게 기독교, 무속신앙, 일본 전통 신앙이 복합적으로 얽히며 악의 실체를 모호하게 그려내는 이 작품은 국내외 관객 모두에게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이 글에서는 영화 곡성 속에 담긴 종교적 요소들과 그 안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나는 ‘악’의 개념을 분석합니다.

기독교적 상징의 재해석

영화 <곡성>에서는 여러 인물과 상황을 통해 기독교의 상징들이 등장합니다. 대표적으로 외지인(쿠니무라 준 분)이 등장할 때마다 비와 천둥, 짐승의 울음소리 등이 동반되며, 이는 요한계시록에서 묘사되는 재앙과 종말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또한,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일본 남자의 ‘부활’과 ‘피를 먹는 행위’는 기독교의 성찬식과도 유사한 상징성을 지닙니다. 하지만 이 모든 이미지가 반대로 뒤틀려 사용된다는 점에서 흥미롭습니다. 성스러움이 아닌 오히려 공포와 저주를 암시하게 하며, 관객은 이 상징들이 긍정적인 신의 이미지가 아닌 ‘악마의 위장’일 수 있다는 의심을 갖게 됩니다.

나홍진 감독은 이러한 기독교적 기호를 정통적인 의미로 사용하지 않고, 인물들의 공포심과 편견을 자극하는 장치로 활용합니다. 이는 단순한 선악 구도가 아닌, 인간 내면의 불확실성과 ‘믿음’이라는 개념의 불안정함을 보여주는 기법입니다. 특히, 목사와 무당의 대립 구조는 한국 사회 내 종교 갈등의 은유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기독교가 말하는 ‘악’은 외부의 존재라기보다, 결국 믿음에 대한 집착 속에서 발생하는 내부의 붕괴일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영화 속에서 종종 등장하는 ‘빛과 어둠’의 상징, ‘피로 맺어진 계약’ 등은 성경적 구조와 매우 유사한 패턴을 따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역설적으로 사용되어 오히려 악을 정당화하거나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관객은 끊임없이 어떤 해석이 옳은지 혼란을 겪으며, 이로써 곡성은 단순한 서사가 아닌 철학적 질문으로 확장됩니다. 이처럼 <곡성>은 기독교적 프레임을 뒤틀어 종교 그 자체에 대한 사유를 이끌어냅니다.

무속신앙과 민간신앙의 복합성

<곡성>은 한국 영화 중에서도 드물게 전통 무속신앙을 정면으로 다룬 작품입니다. 특히 황정민이 연기한 무당 ‘일광’은 이야기의 핵심 인물 중 하나로, 그는 굿과 저주, 점괘를 통해 사건에 개입하며 중심 갈등을 만들어냅니다. 영화 초반 관객은 무속신앙이 악을 몰아내는 긍정적인 존재로 느낄 수 있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무당의 정체성은 불분명해지고, 악의 편인지 선의 편인지조차 알 수 없는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이는 실제 한국 사회에서 무속신앙이 갖는 이중적 이미지와도 유사합니다. 무속은 종종 조상신, 수호신을 모시는 긍정적인 전통으로 보이지만, 동시에 저주, 퇴마, 죽음과 연관된 어두운 이미지도 가지고 있습니다. <곡성>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듯, 무속의 모든 상징을 모호하게 배치하여 관객이 스스로 해석하게 만듭니다.

무당 일광은 극 중 내내 상반된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한편으로는 위기의 상황에서 주인공 가족을 돕는 존재로 보이지만, 동시에 악의 세력과 내통하는 듯한 이중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그의 굿 장면은 시청자에게 시각적 충격을 주는 동시에 ‘선한 의도’와 ‘저주’의 경계를 허물어뜨립니다. 이런 이중성은 무속신앙의 모호함과 함께 영화의 핵심 긴장 요소로 작용합니다. 이처럼 곡성은 무속신앙을 고정된 이미지가 아닌 복합적 실체로 다뤄냅니다.
무속은 민간의 믿음과 전통에서 출발했지만, 영화 속에서는 두려움과 혼란을 조장하는 도구로 기능합니다. 이 모순은 ‘믿음’이라는 감정의 양면성을 드러내며, 관객 스스로 자신이 무엇을 믿는지를 되묻게 합니다.

‘악’의 실체는 무엇인가

가장 큰 질문은 바로 이것입니다. 영화 <곡성>에서 말하는 ‘악’은 과연 누구이며, 무엇일까요? 일본 남자일까요? 아니면 일광? 혹은 무기력한 경찰 종구일 수도 있습니다. 영화는 어떤 인물도 명확하게 선하거나 악하지 않도록 연출합니다. 관객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확신하지 못한 채 질문을 안고 극장을 나서게 됩니다.

이러한 모호성은 <곡성>의 핵심 테마입니다. 영화는 선과 악, 믿음과 의심의 경계를 허물며, 오히려 그 중간지대에 존재하는 인간의 불안과 두려움을 중심에 놓습니다. 종구가 자신의 딸을 구하기 위해 어느 편을 믿어야 할지 갈등하는 과정은, 우리 모두가 인생에서 마주하는 선택의 본질을 상징합니다. 그 선택이 잘못되었을 때, 결과는 되돌릴 수 없는 참사가 될 수 있다는 점도 강조되죠.

특히 악의 실체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은 <곡성>이 철학적 텍스트로 기능하게 만듭니다. 나홍진 감독은 ‘진짜 악은 사람의 공포와 망설임 안에서 시작된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암시합니다. 일본 남자가 정말 악의 화신인지, 아니면 우리가 만든 허상인지 판단할 수 없도록 설계된 서사는, ‘악’에 대한 고정 관념 자체를 해체시킵니다. 결과적으로 <곡성>은 외부의 존재보다 내면의 어두움이 더 큰 공포라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영화는 악을 외면할 때보다 맞서려 할 때 오히려 더 커진다는 아이러니를 보여줍니다. 종구의 불안과 집착이 결국 비극의 원인이 되는 흐름은, 악이 타인이 아닌 자기 안에 있다는 경고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