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바리움(Vivarium)은 단순한 스릴러나 미스터리 장르를 넘어서 현대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비유적으로 담아낸 작품입니다. 이 영화의 결말은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지만,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상징들로 가득합니다. 특히 사이클 구조, 미로 형태의 도시, 반복되는 일상은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키워드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영화 비바리움의 결말을 중심으로 이 세 가지 핵심 키워드의 의미를 해석해 보겠습니다.
사이클 구조: 시작과 끝이 동일한 현실
비바리움의 결말에서 우리는 처음 장면과 매우 유사한 상황을 마주하게 됩니다. 주인공 톰과 젬마가 알 수 없는 공간에서 ‘아기’를 키우고, 결국 죽음을 맞이하며, 그 다음 사이클이 새로운 인물로 이어집니다. 이 구조는 무한 반복되는 사이클을 상징합니다. 이러한 구성은 단순한 이야기적 장치가 아니라, 현대 사회 속 개개인의 삶이 구조적으로 반복되는 현실을 암시합니다.
특히 이 영화에서 주어진 공간은 결코 벗어날 수 없는 폐쇄된 시스템으로, 인간이 일생 동안 수행하는 ‘성장-결혼-양육-노동-죽음’의 순환을 메타포로 제시합니다. 영화는 이 사이클이 개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제되며, 시스템 안에서 개인은 교체 가능한 존재임을 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에 톰이 죽고, ‘아이’였던 존재가 새로운 판매자로 등장하면서 사이클이 이어지는 장면은, 마치 현실의 노동 시장과 인간 관계에서의 대체 가능성을 상징합니다.
이처럼 영화 비바리움은 구조적 억압과 인간의 반복적인 삶의 순환을 사이클 구조로 표현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나는 어디쯤 있는가’라는 자문을 던지게 만듭니다.
우리는 일상이라는 이름 아래 얼마나 자주 순응하고 있을까요?
의문 없이 반복되는 삶은 결국 시스템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계속됩니다.
그 속에서 진정한 자율성과 해방은 가능한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로: 탈출 불가능한 시스템
영화의 배경이 되는 주택 단지 ‘Yonder’는 모든 집이 똑같고, 끝없이 반복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젬마와 톰이 탈출을 시도할 때, 어떤 방향으로 가도 같은 집으로 되돌아오는 미로 같은 구조는 단순한 공간적 혼란이 아니라, 설계된 감금의 시스템임을 암시합니다. 이는 마치 현대 도시 사회에서의 주거 문제, 삶의 조건, 제도적 통제 속에서 인간이 느끼는 탈출 불가능한 무력감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미로는 관객에게 일종의 ‘프랙탈 구조’처럼 느껴집니다. 한 번 들어오면 절대로 나갈 수 없는, 자율성이 철저히 제거된 공간은 일상 속의 반복과 감정의 무감각화를 가져옵니다. 이 공간에서는 시간의 흐름조차 명확하지 않으며, 심지어 햇빛과 날씨조차 통제된 인공 세계입니다. 이는 우리가 사는 시스템이 얼마나 통제되고 표준화된 것인가를 시각적으로 드러냅니다.
미로처럼 설계된 공간은 주인공들의 육체적 탈출뿐 아니라 심리적 해방조차도 차단하며, 시스템 자체의 거대함과 개인의 무력함을 대비시켜 인간 존재의 불안함을 강화합니다.
감독은 이 미로를 통해 현대인의 심리적 감금 상태를 직설적으로 보여줍니다.
주거의 평준화가 곧 자유의 제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개인의 고유성은 어디에서 사라지고 있는가를 되묻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이 정형화된 세계는 스스로 선택한 삶인지, 누군가가 설계한 감옥인지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 미로에서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라는 질문이 남습니다.
반복: 존재의 이유를 잃은 일상
비바리움에서 가장 인상 깊은 연출 중 하나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입니다. 주인공들은 매일 아침 같은 방식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같은 장소에서 같은 활동을 하며 살아갑니다. ‘아이’는 급속도로 성장하면서도 감정을 갖지 않고, 기계적으로 대화를 흉내내는 등 반복 속에서 인간적인 감정을 상실한 존재로 묘사됩니다.
이러한 반복은 물리적 시간뿐만 아니라, 감정과 삶의 의미까지 단조롭게 만들어버립니다. 결국 톰은 땅을 파며 점점 미쳐가고, 젬마 역시 절망 속에서 무기력해집니다. 반복은 단순한 패턴이 아니라, 자아가 붕괴되고 정체성이 모호해지는 과정을 묘사하는 장치로 쓰입니다.
결말에서 반복은 또 다른 순환의 시작으로 이어지며, 새로운 ‘피해자’가 시스템에 진입함으로써 계속됩니다. 이는 관객에게 “당신의 일상도 혹시 이 반복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반복은 안정감이 아닌, 통제의 상징이며 삶을 무력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소로 표현됩니다.
이 반복은 관성처럼 작동하며, 누구도 그 경로를 벗어나기 쉽지 않습니다.
감정 없는 루틴은 삶의 본질을 흐리게 만들고, 존재 의미를 빼앗아 갑니다.
우리는 이 루틴을 자각하고 있는가, 아니면 무의식 중에 복종하고 있는가?
무의식적 반복은 곧 자아의 해체로 이어지며, 자율성의 종말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파괴는 조용히, 일상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