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는 그저 특이하고 화려한 멀티버스 영화가 아닙니다. 이 영화는 수많은 가능성과 혼란 속에서 우리가 ‘나’로서 존재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합니다. 특히 ‘정체성’과 ‘선택’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매우 독창적이면서도 감성적으로 풀어내며, 관객 개개인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이 글에서는 이 작품이 우리에게 던지는 정체성과 선택의 의미를 차분하게 분석해봅니다.
무한한 가능성 속의 혼란: 정체성의 파편화
영화의 주인공 이블린은 평범한 이민자 가정의 중년 여성입니다. 세탁소를 운영하며 남편과의 관계, 딸과의 갈등, 그리고 세금 문제 등 크고 작은 삶의 문제들을 감당하고 있는 그녀는 어느 날 갑작스럽게 믿을 수 없는 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자신이 수많은 평행 우주 속 ‘또 다른 나’들과 연결되어 있으며, 그 각각의 세계에서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 말이죠.
어떤 우주에서는 무술의 달인이고, 어떤 우주에서는 유명한 배우, 또 다른 우주에서는 손이 핫도그처럼 생긴 세계에 살고 있기도 합니다. 이처럼 영화는 멀티버스라는 장치를 통해 '내가 될 수도 있었던 수많은 나'를 동시에 보여줍니다. 그 설정 자체는 매우 황당하고 초현실적이지만, 그 속에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질문이 담겨 있습니다.
바로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 그리고 “내가 다른 길을 선택했다면 더 나은 사람이었을까?”
이블린은 각기 다른 자아들과의 연결 속에서 점차 혼란에 빠집니다. 지금의 자신은 수많은 가능성 중에서 실패한 선택의 결과처럼 느껴지기 시작하죠. 영화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현대인이 겪는 정체성 혼란을 섬세하게 드러냅니다. 사회적 역할, 가족의 기대, 문화적 배경 속에서 우리는 어떤 자아로 살아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이블린의 혼란은 곧 우리 자신의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영화는 이러한 파편화된 정체성의 여정을 보여주며, 결국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스스로 정의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누군가의 시선이나 사회적 기준이 아닌, 나 자신이 나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결국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이블린의 여정을 통해 진지하게 보여줍니다.
선택의 무게: 모든 가능성 중에서 지금을 택하는 용기
<올앳원스>는 단지 ‘정체성’의 문제에 그치지 않습니다. 영화가 정말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선택이라는 주제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맞닥뜨리는 수많은 결정들 — 진로, 관계, 이사, 결혼, 혹은 아주 사소한 일상의 선택들까지 — 이 모든 선택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든다는 생각은 익숙하면서도 막막하죠.
이블린은 수많은 다른 자신을 보며, 과거의 선택들이 불만족스러웠다고 느낍니다. “내가 만약 다른 길을 갔다면 더 나은 인생을 살고 있었을까?”라는 의문은 결국 지금의 나를 부정하고 싶다는 감정으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영화는 여기서 반전을 줍니다.
그토록 결핍처럼 느껴졌던 지금 이 삶이야말로 가장 의미 있는 선택의 결과라는 것을 이블린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것이죠.
이는 멀티버스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 속에서 오히려 더 현실적인 메시지를 담아냅니다. 인간은 완벽한 선택을 할 수 없습니다. 어떤 길을 선택하든 늘 다른 가능성은 남아 있고, 때때로 후회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가능성 중에서 지금 이 자리에 머무르기로 한 용기, 그 자체가 의미라는 점을 영화는 강하게 전달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막연한 자기계발이나 ‘될 수 있는 나’에 대한 환상을 조장하기보다, ‘지금 여기’에 있는 자신을 받아들이는 용기를 응원하는 작품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자기 삶에 대한 존중이며, 과거의 선택들에 대한 화해이자, 미래를 살아가는 태도이기도 합니다.
극단과 무의미함 속에서 건져 올린 의미: 연결, 그리고 사랑
영화 속 또 하나의 중요한 축은 이블린의 딸 조이, 혹은 조부투파키라는 인물입니다. 그녀는 멀티버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모든 가능성을 인식하는 능력에 의해 절망에 빠진 존재입니다. 그녀에게 세상은 너무 복잡하고, 너무 많은 것이 가능해서 오히려 아무 것도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이른바 ‘모든 것이 다 가능하면, 아무 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입니다.
조이는 이 무의미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베이글’을 만듭니다. 그 안에는 존재의 허무, 정체성의 붕괴, 관계의 단절이 담겨 있죠. 이 설정은 다소 비유적이고 실험적인 방식이지만, 결국 많은 현대인들이 느끼는 실존적 외로움과 공허함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블린은 결국 조이에게 다가가며 말합니다.
“나는 여전히 네 엄마야. 그리고 나는 너를 사랑해.”
그 말은, 수많은 가능성 중에서 누군가와 연결되는 감정만큼은 절대적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 어떤 세계, 그 어떤 삶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과 관계라는 사실.
우리는 수많은 선택과 가능성 속에서 길을 잃기 쉽지만, 결국 우리를 붙잡아주는 건 누군가와 맺는 진실된 관계입니다.
이 메시지는 매우 단순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오히려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삶의 나침반 같은 메시지입니다. 영화는 화려한 액션과 빠른 전개 속에서도 이 단단한 중심을 놓치지 않으며, 보는 이로 하여금 감정의 파도를 따라가게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