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죽여주는 여자는 단순한 휴먼 드라마를 넘어,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존재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깊이 있는 문제작이다. 노년의 성, 인간 존엄성, 사회적 혐오 등 우리 사회가 외면하거나 꺼리는 주제를 용기 있게 다루며, 관객에게 불편한 진실과 마주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재용 감독의 사실적인 연출과 문소리 배우의 몰입도 높은 연기는 삶의 끝자락에 선 이들의 고통과 존엄을 가슴 깊이 전달한다.
노년의 성, 터부에서 삶의 일부로
한국 사회에서 ‘노인의 성’은 여전히 터부시되는 주제다. 대부분의 미디어와 사회적 담론에서 노년층은 성적 주체로서 존재하지 않으며, 성적 욕망은 부끄럽거나 없어야 할 것으로 간주된다. 영화 죽여주는 여자는 이러한 사회적 금기를 정면으로 다룬다. 주인공 소영은 나이 든 남성들의 외로움과 욕망을 받아들이며, 성을 단순히 육체적 행위가 아니라 정서적 교감으로 보여준다.
소영의 행위는 단순한 생계형 성매매로 보이지만, 그녀의 눈빛과 말투, 상대를 대하는 태도에서 우리는 ‘성’ 그 이상의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그녀는 상대방의 손을 잡고, 말을 들어주고, 정성스럽게 음식을 나눠주며, 그들과 ‘사람 대 사람’으로 연결된다. 이는 우리가 흔히 갖고 있는 성매매에 대한 고정관념을 뒤흔든다. 특히 노인들이 겪는 정서적 고립과 신체적 소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들의 욕망조차도 부정하지 않는 태도는 관객으로 하여금 불편하지만 중요한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성은 삶의 일부이며, 나이가 든다고 해서 욕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노년의 성은 사회적으로 무시당하고, 조롱받기 일쑤다. 영화는 이러한 현실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특히 소영이 ‘노인들이 외로워서 찾는다’고 말하는 장면은 성적 행위가 단순한 욕망의 배출이 아니라 인간적인 연결과 존엄의 문제임을 암시한다.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노년기의 욕망을 수치심이 아닌 ‘존재의 일부’로 바라보아야 함을 배운다.
인간 존엄성의 경계에서
영화는 죽음과 삶의 경계선에서 인간이 얼마나 외롭고, 때론 스스로 존엄을 지켜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지를 고요하게 그린다. 주인공 소영은 성적 위안을 넘어, 삶의 끝자락에 선 이들에게 ‘죽음의 동반자’ 역할도 한다. 극 중 소영은 더 이상 살 의미가 없다고 느끼는 노인들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며, 이들에게 고통 없는 마지막을 제공한다. 법적으로는 명백한 범죄지만, 영화는 이 행위에 대한 도덕적 해석을 관객에게 맡긴다.
노인들이 처한 상황은 끔찍할 정도로 고립되어 있다. 자식에게 버림받고, 병원에서는 무시당하며, 복지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채로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영화 속 연출이 아니라 실제 현실이기도 하다. 그런 상황에서 삶을 포기하고 싶어하는 것은 비정상적인 감정이 아닐 수도 있다. 영화는 이 복잡한 감정을 아주 담담하게 보여준다. 소영은 울지도, 화내지도 않고 조용히 이들을 받아들이며, 그들의 삶을 마지막까지 함께한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은 ‘과연 인간의 존엄이란 무엇인가’이다. 단순히 살아있는 것이 존엄인가, 아니면 스스로의 의지로 삶을 마무리할 수 있는 권리가 존엄인가? 영화는 이에 대해 어떤 정답도 내놓지 않는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소영이 행하는 이 마지막 동행은 단순한 범죄가 아닌 인간적인 연민과 책임의 표현이라는 점이다. 그녀의 선택은 어쩌면 이 사회가 해주지 못한, 마지막 배려일지도 모른다.
사회적 혐오와 침묵의 구조
죽여주는 여자가 특별한 이유는, 단지 노년의 성이나 존엄에 대한 문제를 다루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 전반에 만연한 ‘혐오의 구조’를 폭로하기 때문이다. 소영이라는 인물은 단순한 개인이 아니라, 사회가 불편해하는 존재를 상징한다. 영화 속에서 그녀는 경찰, 복지사, 의료진 등 여러 사람들로부터 지속적으로 무시당하고, 조롱받고, 때론 혐오의 대상이 된다. 그녀가 한 인간으로서 존중받는 장면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혐오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신, 차분하게 현실을 비춘다. 혐오가 어떻게 일상 속에 스며들어 있는지, 어떻게 시스템적으로 방치되고 정당화되는지를 섬세하게 드러낸다. 우리는 영화를 보며 ‘왜 소영 같은 사람이 존재해야 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녀가 제공하는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이 사회가 얼마나 무관심하고 배제적인지를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소영의 존재는 사회적 시스템의 틈새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대변자처럼 보인다. 그녀는 분명 법을 어긴 사람이다. 하지만 그녀를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영화는 이러한 도덕적 딜레마를 통해, 관객이 스스로 자신의 가치관을 돌아보도록 만든다. 또 하나의 상징적인 장면은 그녀가 감옥에 들어가는 장면이다. 자유로운 삶 대신 감옥이라는 질서 속의 안정을 선택한 그녀의 선택은, 우리가 만든 혐오의 사회가 얼마나 차가운지를 보여주는 아이러니이기도 하다.